정치적 현상을 통해 살펴본 책임의 문제
페이지 정보
작성일 22-12-29 20:55
본문
Download : 정치적 현상을 통해 살펴본 책임의 문제.hwp
친일... 사실 이 말은 어떤 면에서는 참 식상한 것이다. 여러 공직을 거쳤던 <모리스 파퐁>은 점령 독일군에 협조하여 프랑스내의 유태인 추방에 관한 서류에 서명을 했고, 그 서류가 30여년이 지난 다음 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상으로하여는 공소시효를 없애버린 프랑스는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를 가차없이 재판정에 세웠다. 이러한 협력의 대열에는 유명한 문인작가들, 정치인들, 언론인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오히려 점령군 독일보다 더 강한 어조로 독일과의 <협력>을 촉구했다. 프랑스 바깥에서 드골이 프랑스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며 프랑스의 <칼>이 되었다면, 자기는 프랑스 내부에서 점령군의 요구에 대항하며, 점령군과 프랑스 국민 사이에서 일반국민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었다는 논리였다. 전혀 낯설지 않은 논리이며 풍경이다.
제법 그럴듯한 이 <상황론>은, 비시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영국에서 <자유프랑스> 망명政府(정부)를 이끌던 드골과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프랑스국민에 의해 독일 패전과 동시에 박살난다. 그러니까 독일의 유태인 학살에 동조하고 독일이 각종 프랑스 물자나 프랑스인을 징용, 징발하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또 레지스탕스를 탄압했던 것도 전부 보다 많은 프랑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으며 불가피한 <협력>이었다는 논리였다. 끊임없이 거론되지만 한번도 우리사회에서 제대로 심판 받은 적이 없기에 또 그 이야기냐... 라는 심정에서 그러하기도 하거니와, 그 당시에는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불가피했다는 <상황론>이 알게 모르게 우리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하다.
프랑스의 경우 4년간 비시정권하에서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7천명이 넘는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았고…(skip)





프랑스 바깥에서 드골이 프랑스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며 프랑스의 <칼>이 되었다면, 자기는 프랑스 내부에서 점령군의 요구에 대항하며, 점령군과 ...
순서
프랑스 바깥에서 드골이 프랑스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며 프랑스의 <칼>이 되었다면, 자기는 프랑스 내부에서 점령군의 요구에 대항하며, 점령군과 ... , 정치적 현상을 통해 살펴본 책임의 문제인문사회레포트 ,
,인문사회,레포트
정치적 현상을 통해 살펴본 책임의 문제
Download : 정치적 현상을 통해 살펴본 책임의 문제.hwp( 27 )
레포트/인문사회
설명
다. 그럼 왜 <모리스 파퐁>이 1940년대가 아니고 1990년대에 재판정에 섰느냐...
이 재판은, 그가 비시정권하에서 비인도적 행위를 했던 것이 발각되면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