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의 기원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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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0-2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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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웅태 {한국 가톨릭 신앙의 현실 - 한국 그리스도 사상 1집} 한국그리스
도사상연구소 1993 p 26 > }}
1592년설은 1779년에 비해 논할 가치가 별로 없으나, 국외에서 주장된
것이라 간단히 살피고자 한다. 천주교회의 영세 받지 않은 예비자들을 한국 천주교회의 신
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최석우 신부 등은 그들의 영세 이전 이
유로 1779년설을 인정하지 않고 있따
카톨릭의 교회법 제204조 2항에 보면 ` 교회는 이 세상에서 하나의 사회
로 구성되고 조직되어 베드로의 후계자 및 그의 친교 안에 있는 주교들에
의하여 통치되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
{{ . 1779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천진암성지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변기영 신부이
다.






{{ . 1779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천진암...
설명
1779년을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으로 삼아야 된다는 주장은 1970년대에이르러서 였다.`고 명명하고 있따 그러나
법적인 제도 조차 마련되지 않은 선교지에서 문제는 이 법칙의 효용성이
문제시 된다 1784년 9월 경 이승훈이 이 벽에게는 세례자 요한, 권일신에
게는 프란체스코 사베리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준 것은 분명히 카톨릭
측에서 인정하는 바와 같이 가성직제(가성직제 또는 가교계제도
1786-1788)이다.{{ . 1779년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천진암... , 한국기독교의 기원문제인문사회레포트 ,
,인문사회,레포트
레포트/인문사회
1779년을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으로 삼아야 된다는 주장은 1970년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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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년을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으로 삼아야 된다는 주장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 였다. < 변기영 {무영의 순교} 한국 천주교회 창립사 연구소 1990 p 114-116 > }}
1779년을 기원으로 삼는다면 한국 천주교는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다.
1592년설이 국내에서 문제가 된 것은 1889년 12월 서강대학교 동아culture
연구소에…(省略)
이르러서 였다. 그러나 국내의 교회사학자 최석우 신부와 이원순 교수 등
이 1784년을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으로 삼고 있따 1779년을 한국 천주교
회의 기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한국 천주교의 신앙전통은 이 때부터
이어진다고 보아야 하고 1770년부터 1784년에 이르는 기간을 요람기(요람
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